2013. 12. 17. 15:06ㆍ나의 이야기/나의글
작은 크리스마스 타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참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우리 집 거실에는 거리를 향해서 커다란 bay window(밖으로 내민 창)이 있다.
이 창문에 간단하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장식에 쓴 크리스마스 라이트는 거의 20여 년이 된 것이다.
이 크리스마스 라이트를 보니 2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12월 중순에 밖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려고
사다리를 놓고 집 앞에 장식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언니한테서 온 전화였다.
엄마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다시 입원을 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하던 장식을 다 상자에 넣어서 지하실 창고에 넣어두고
급하게 비행기 표를 사서 다음날 쌘디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남편이 이왕 간 김에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그해의 크리스마스를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지냈다.
그 크리스마스가 내가 어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다음해 2월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 쌘디는 열 살 정도였던 것 같다.
할머니의 병이 나으라고 주말 한국학교에서 배운 애국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불러주고
짠둥이 쌘디가 거금의 돈을 투자해서 할머니가 목욕하는데 쓰는
양젖으로 만든 고급 비누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고
할머니가 목욕을 할 때마다 목욕탕에 몰래 들어가 비누가 부드럽고 좋으냐고
할머니한테 확인을 받고 하면서 갖은 재롱을 부렸다.
엄마네 아파트는 거실, 침실이 하나 그리고 부엌 옆에 식탁을 놓은
작은 다이닝 룸이 있었다.
아파트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깨끗하고 또 햇빛이 잘 들어 거실에는 화분도 많이 있었다.
특히 아프리칸 바이올렛을 좋아하셔서 많은 종류의 바이올렛 화분이 있었다.
작은 것부터 큰 것, 작은 방석만큼 큰 것도 있었다.
침실이 하나뿐이니 나는 엄마와 침실에서 같이 자고
쌘디는 거실에서 슬리핑백에서 잤다.
집에서는 망나니 노릇을 하던 쌘디가 할머니 집이라고
일찍 일어나서 슬리핑백도 돌돌 말아서 거실 한 모퉁이에
놓아두고 얼마나 체면을 차리던지 할머니가 “네가 이모들보다 더 낫구나”하셨다.
그해에는 시카고에 눈이 유난스럽게 많이 내렸다,
집에 전화를 하면 눈이 10인치(25센티)가 와서 눈을 치우고 지금 들어 왔다고.
너무 눈이 쌓여서 뒤뜰에 우리 개, 쟈니가 다니는 길을 터널처럼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직장에도 나가야 하고
음식도 할 줄 모르는 남편이 혼자 개를 데리고 있는 게 마음에 쓰여서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돌아왔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가시기 전에 크리스마스를 어머니와 함께 보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은 크리스마스 장식을 별로 하지 않았다.
이번 주 목요일에 딸의 식구들 넷이(딸, 사위, 손주 챨리 그리고 손견 다윈)
크리스마스를 우리 집에서 보내려고 온다.
그래서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크리스마스 라이트를 살까 하다가 오래전에 지하실 창고에 놔둔
이 라이트가 생각이 나 가지고 올라와 시험을 해보니 아직 라이트에
불이 들어와 이렇게 장식에 썼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도 나의 이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시겠지? 그리고 철부지 손녀가 자라서 이렇게 결혼을 하고 장군 같은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나들이 하는 것도 보시겠지? “나의 손녀 쌘디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았구나.” “야~~ 그놈 한번 잘 생겼다” “틀림없이 외탁을 했네.” “이 증조 할미를 꼭 닮았네.” 하시겠지?......
앞집의 크리스마스 장식도 사진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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