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미술관에 가면

2015. 5. 31. 12:59Art/Favorite Artists

 
    지난 가을의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의 길이다. 주말이면 돌담길 옆 동그란 돌의자엔 앉을 자리가 없다. 여기저기 보이는 건 데이트를 나온 젊은 청춘들뿐, 시냇물처럼 투명해 보이는 그들에게선 늘 라일락 향기가 난다. 덕수궁 돌담길은 추억의 길이다. 서울에 주소를 둔 사람치고 한시절, 이곳을 거쳐가지 않은 청춘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역시 카레국물같은 노란 은행잎이 고봉으로 쌓이는 가을날이면 친구들과 이곳을 자주 찾곤 했었다. 덕수궁 돌담길을 주욱 따라가다 보면 작은 분수대가 나온는데 그 분수대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작은 샛길이 보이고 그 샛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점'이 나온다.
    미술관 입구 낮으막한 언덕길엔 잘 가꾼 나무숲이 조성돼 있고 그 숲속에선 유명작가들의 설치미술전이 자주 열린다. 어느 땐 미술관 앞 넓은 광장까지 작품들로 가득차, 그 기묘하면서도 특이한 작품들을 앵글에 담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한 적도 있다.
    시립미술관에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그곳에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화백의 상설 전시관이 있기 때문이다. 1998 년, 천화백님이 93 점의 작품을 서울시에 기증하면서 만들어진 이 전시관은 언제나 입장료가 무료이다.
    화가의 방 미술관 2 층으로 올라가 '천경자의 혼을 찾아서' 라는 문구가 써있는 전시관에 들어서면 천경자 화백이 작품을 제작할 때 사용했던 붓, 물감, 화구들과 함께 평소 작품을 제작하던 천화백님의 모습이 '화가의 방'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어 있다. 천화백님의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그동안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천화백님의 수필집이었다. 천경자 화백님께서 수필을 쓰신다는 얘기는 옛날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나 많은 수필집을 내셨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전시실 벽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천경자 화백은 1955 년 (32 세) 첫 수필 '여인의 소묘'를 출간하고 이후 여러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여 뛰어난 수필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벽에 써놓은 글이 아니더라도 유리상자 안에 전시돼 있는 수필집은 무려 13 권이나 되었는데 책 제목이 그림 이름과 똑같은 수필집이 여러권이어서 깜짝 놀랐다. 천화백님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같은 제목의 수필집을 읽으면 되겠구나 싶기도 했었고. 이 전시실에는 천경자 화백이 학창시절 그렸던 도인화, 드로잉을 비롯,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자화상과 세계여행을 통해 제작된 풍물화와 인물화 등 1940 년대부터 1990 년대에 그려진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내 슬픈 전설의 49 페이지>와 <캣츠>, 그리고 <괌도>,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 <여인의 시>, <이탈리아 기행> 등이었다.
    이탈리아 기행 ( 1973 ) 천경자 화백은 1924 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광주에 있는 전남여고를 거쳐 1944 년 도쿄 여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70 년 파리 아카데미 고에쓰에서 수학했다. 1954 년부터 1974 년까지 홍익대학교에서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12 번의 개인전과 함께 1965 년 5 월 문예상, 1971 년 서울시 문화상, 1975 년 3.1문화상, 1979 년 예술원상, 1983 년 은관문화훈장, 대통령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99 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선정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됐다. 1991 년 미인도 위작사건으로 미술계에 환멸을 느낀 천화백님은 4월 7일 아래와 같이 절필을 선언하는 말을 남긴 채, 대한민국예술원에 회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다. "붓을 들기가 두렵습니다. 창작자의 증언을 무시한채 가짜를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남긴채 미국으로 홀연히 떠나 현재까지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작으로 밝혀진 미인도 ( 1977 ) 가짜 미인도에 휘말려 국립미술관의 질타와 미술계 사람들의 냉소 섞인 조롱과 비난을 들으면서 천화백은 말한다. "내 작품은 내 혼이 담겨 있는 핏줄이나 다름 없습니다. 자기 자식인지 아닌 지 모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결코 그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나는 절대 머릿결을 새카맣게 개칠하듯 그리지 않아요. 머리위 꽃이나 어깨 위 나비 모양도 내 것과는 달라요. 작품 사인과 연도 표시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난 작품 년도를 한자로 적는데, 이 그림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적혀 있어요.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 보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천화백 편에 서서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해댔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 어느덧 8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간 후, 미인도를 그렸다는 진짜 위조범이 나타났다. 미인도를 본인이 직접 그렸다고 자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끝까지 '이 미인도는 진품이다. 전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소장품이었다가 국가에 환수되어 재무부 문공부를 거쳐 미술관으로 넘어온 소장 경위가 확실하다는 근거와 함께 전문위원이었던 미술평론가 오광수씨가 이미 진품으로 감정했다' 라는 이유를 들어 진품으로 주장했다. 화랑협회 감정위원회도 1 차 감정 실시후 적어도 가짜는 아니다란 결론을 냈고, 2 차 감정에서도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생존 작가이고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화랑협의회 내부 규정에도 어긋난 결론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재판까지 가게 되었지만 법원에서는 판단 불가를 판정했다. 위작을 주장했던 천경자 화백으로서는 대한민국 미술계로부터 뒷통수를 맞은 격이었다고나 할까?
    목화밭에서 ( 1954 ) 이 '목화밭에서'는 2006 년 3 월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내 생애 아름다운 82 페이지'라는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작품이다. 1960 년대 꿈과 환상의 세계로 요약되는 독자적 화풍이 정립되기 전에 그린 작품으로, 어느 하늘 푸르른 날 낮으막한 산기슭으로 나들이 나온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졌다. 원시적이고 화려한 색채,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 빈틈없는 구도와, 이국적인 분위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문학적 요소를 고루 갖춘 이 작품은 2006 년 경매 시작가격이 9 억원부터 라는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길례언니 ( 1973 ) 길례언니는 천경자 화백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의 하나로, 천경자 화백만의 독창성이 깃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길례언니는 천화백의 초등학교 선배이며, 그 당시 소록도의 간호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고 한다.
    4 월 ( 1974 ) 1974 년 천경자 화백이 아프리카를 다녀온 뒤 그렸던 '4 월'이라는 작품 속에 나오는 갈색 피부의 여인은 머리에 연보라빛 등꽃을 흐드러지게 휘감고 있다. 등꽃의 싱그러움과 여인이 바른 립스틱 빛깔은 같은 색이다. 호랑나비 한 마리 날아다니는 이 화려한 봄날에 여인의 커다란 눈망울은 어이해 저리도 슬퍼보이는 건지...
    孤 ( 1974 ) 머리에 인 고운 화관도 꽃 사이를 파고드는 한 마리의 작은 호랑나비도 그녀에게 안식을 주지는 못하나 보다. 고운 꽃과 밝은 옷차림으로 슬픔을 감추려고 하면 할 수록 슬픔의 강물은 그녀의 강둑을 범람한다.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 ( 1977 )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는 천경자 화백이 자신의 22 세 때를 회상하며 그렸던 작품이라고 한다. 작품 속 여인의 머리 위에는 여러 마리의 꽃뱀이 치렁치렁 머리를 휘감고 있는데, 작가는 무슨 연유로 우수 가득한 이 여인의 머리 위에 그토록 징그러운 뱀을 그려넣은 것일까? 6.25를 전후로 그녀의 삶은 최악의 시련을 맞게 된다. 그것은 아버지와 여동생이 병이 들어 죽어가는 데도 약 한 첩 쓸 수 없이 가난했을 뿐만 아니라 첫번 째 결혼에 실패한 후 가정을 둔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을 내려다 보면서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마비시킬 무섭도록 자극 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했고, 그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과 자신을 화관처럼 두르고 있는 저 꽃뱀이었다고 한다.
    황금의 비 (1982 ) 황금색 꽃들 함박눈처럼 내리는 공간에서, 황금빛 화관을 쓴 갈색 피부의 여인은 더없이 찬란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한 저 여인의 맑은 눈망울을 보라! 내 마음까지 훤히 들여다 본 듯 싶은 저 맑고 투명한 눈앞에서 나는 내 자신을 가리는 것조차도 너무 벅차다.
    두상 ( 1982 ) 여인의 커다란 눈매가 시원스러우면서도 깊은 내면의 슬픔을 담고 있다. 휘휘 늘어진 연보라빛 등꽃과 하얗고 긴 목이 늦가을 산국화 위에 내린 하얀 서릿발처럼 쓸쓸하고 애처롭다. 이 작품이 천화백님의 대표작인 이유를 조금은 알것도 같다.
    청춘의 문 이 작품은 유명 여배우를 모델로 해, 몽환적이면서도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한 탐미주의적 작품이라고 한다. 단두대 위에 머리를 내놓고도 여전히 기품있고 아름다운 여인, 그녀를 보면서 나는 어쩐지 자신의 청춘을 단두대 위에 놓고 목잘라버렸을, 젊은 화가의 창백한 청춘시대를 목격한 기분이었다.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감꽃향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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