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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소묘(素描) / 이만섭
bluepoppy
2013. 1. 25. 08:52
풍경의 소묘(素描) / 이만섭
한 하고 포근한 젖빛하늘
일광이 풍경을 흔연스레 비추는데
산이 강에 내려와 물을 베고 누워 있다
저렇듯 한가로운 날은 산도
물 곁에서 한 숨결 내리고 싶은 것일까,
거대한 몸집은 필시
일순간에 첨벙 하고 들여놓았을 터인데
물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표정은 숨죽인 듯 명징하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올까,
물의 촉수들이 일제히 수런거리자
산이 재빠르게 물속을 빠져나간다
어느 쓸쓸한 저녁, 달이
강 가운데서 은밀히 노닐던 그 밤에도
물의 촉수들이 바람결에 수런거리자
달은 황급히 하늘로 돌아갔다
그때도 나는 깨달았다
고요는 풍경을 소묘하지만
중심을 잃으면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