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전여전...
토라짐
점심상에 알배기 굴비를 올릴 때까지만 해도
마나님은 행복감으로 마음이 그들먹했다.
겸상을 하고 막 수저를 들려는데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부전화여서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도 밥상으로 돌아와 보니
그사이에 굴비는 온데간데없다.
살을 어찌나 알뜰하게 발라먹었는지 머리와 꼬리를 잇는
등뼈의 가시가 빗으로 써먹어도 좋을 정도로 온전하고 깨끗하다.
한 마리에 오만 원도 넘는 진자 영광굴비래요,
며느리가 집에 선물 들어온 굴비 두릅에서 세 마리를
갖다 주며 한 말을 마나님은 영감님에게 몇 번이나 되뇌며
그 굴비를 구웠는지 모른다.
아들이 그런 비싼 선물을 받았다는 게 대견해서
마나님은 마냥 신이 났던 것이다.
그러다 별안간 허방을 밟은 것처럼 비참의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이다.
평생 제 입 밖에 모르는 영감과 살아왔거늘 이제 와서 웬 지옥 불같은
증오란 말인가,
아들을 저따위로 키운 시어머니 탓을 하다가.
난 또 뭔가. 내가 저 영감을 저렇게 길들인 걸.
자신을 다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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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노란집'에서
이글을 보니 오래전에 일이 생각난다.
딸이 아주 어렸을 때에 우리가 시카고에 살고 있었을 때다.
우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중국음식점이 새로 오픈을 했는데
음식을 잘 한다고 해서 주말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딸이 어려서 우유병, 기저귀를 준비한 가방을 들고
음식점에 들어가 남편이 좋아하는 팔보채, 새우요리. 그리고 깐풍기
세 접시를 시켰다.
주말이라 손님들이 많아서 그런지 음식이 더디 나왔다.
한참을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
다른 중국음식점과 다르게 접시에 놓인 음식양이 무척 적었다.
음식을 먹으려는데 아이가 보채서 우유를 주고 또 기저귀까지
갈고 먹으려고 보니 팔보채와 새우 요리는 접시가 텅 비어있고
남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깐풍기만 남아 있었다.
남편이 너무 배가 고파서 먼저 먹었다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맛있는 팔보채 그리고 새우접시는 야채만 조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입맛이 딱 떨어져서 속이 좋지 않으니 남은 것 그냥
싸가지고 가져가 먹겠다고 하니
‘왜 갑자기 속이 좋지 않지?’
‘음식의 양은 적어도 요리가 맛있는데.’
?????........
우리 친정은 아버지, 엄마 그리고 딸 셋의 간촐 한 가족이다.
그런데도 식사 때에는 두개의 상을 차린다.
작은 상은 아버지의 상 그리고 조금 큰 상은 엄마와
우리 삼자매가 같이 먹는 상이다.
그렇다고 두개의 상에 놓인 반찬은 다른 것은 별로 없다.
항상 이렇게 두개의 상을 차리고 먹어서 다른 집도 다
이렇게 아버지는 다른 상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시댁은 대가족인데 한상에서 모두 같이 식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 집 음식은 아버지의 식성에 따른 음식이다.
아버지가 밀가루 음식을 좋아 하셔서 겨울에는 칼국수.
만두 국이 자주 상에 올랐다.
여름에는 냉면이 상에 자주 오르고.
이런 어머니를 내가 20여년을 보고 자랐으니
나도 모르게 결혼을 하고도 우리 집의 식탁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 주로 올라온다.
튀긴 새우보다 찜을 한 새우, 갈비고기보다는 불고기를,
야끼만두 보다는 스팀을 한 만두.
이렇게 남편 식성에 맞추어 식생활을 하다 보니 나의
식성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튀김을 좋아하고 갈비를 더 좋아 했는데.
딸이 집에 다니러 온다고 전화가 오면
'무엇이 먹고 싶나?'하고 딸에게 물으면
‘알렌이 순두부를 좋아하는데.’
‘알렌이 꼬리곰탕을 좋아하는데.’ 한다.
딸네 식탁도 딸이 좋아하는 음식보다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오른다.
딸도 내가 하는 것을 20여년 보고 자랐으니.
자기도 모르 게 닮은 것 아닌가 한다.
이렇게 나를 닮으면 안되는데.
그래도 남편, 사위가 집에서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하니.
이것만이라도 다행이 아닌가?
Song: I Believe from "The Chinese Botanist's Daughters"
Composer: Eric Le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