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끼는 오래된 찻잔...
나는 오래전부터 찻잔과 cream과 sugar를 담는 용기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이 내가 사서 모은 것들이다.
지금 올리는 찻잔들은 내가 산 것이 아닌 고국에서 보내온 것들이다.
나의 중고등학교 마크가 들어간 아주 평범한 찻잔.
개교 7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찻잔 세트이다.
학교가 1906년 4월 21일에 세워졌으니 이 찻잔은 1976년에 만든 것이다.
어머니가 미국에 이민을 오실 때에 가지고 오셨다.
교장선생님의 질녀(姪女)가 되시는 분이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다녔고
두 분은 친 자매처럼 지내셨다.
어머니가 한국을 떠나시기 전에 송별회 겸 교회 분들과 저녁식사를 하는데
교장선생님이 '시카고에 있는 딸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이 찻잔 셋트를 주셨다고 한다.
찻잔을 받은 것은 1977년이니 37년이 된 나의 반생보다 더많은 시간을 같이했다.
가끔 이 찻잔에 커피를 마시면 나는 어느 듯 옛날로 돌아가
교정의 한구석에 있는 감나무 아래에 서 있는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된다.
또 하나의 찻잔은 소박한 색의 차를 우려내어 마실 수 있는
자그마한 찻잔이다.
찬잔의 윗부분에 사자성어 모듬이 들어있다.
다른 글은 이해를 잘 못하지만 窈窕淑女(요조숙녀) 君子好逑(군자호구)라는
글은 나에게도 아주 익숙하다.
결혼식에 참석한 귀빈들의 답례품으로
한국에 계신 오빠한테서 받은 찻잔이다.
故 김동리 선생님이 손수 붓글씨를 쓰셔서 오빠의 결혼축하
선물로 주셨는데 그 붓글씨를 찻잔에 담았다.
오빠는 우리 집의 친척은 아니지만 친척이상으로 더 가깝게 지냈다.
사범대학을 나오시고 안동에서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몇 년 후에 우리가 사는 서울로 전근을 하시고 또 대학원을 다니시게 되어
우리 집에 자주 들렸다.
국문학을 하셨는데 김동리 선생님의 추천으로 등단을 하셨다.
나를 무척 따르던 오빠의 딸, 지은이가 의대를 나와 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어
시카고 방사선학회에 와서 두 번을 만났고 우리 집에도 다녀갔다.
지은이가 첫 번째 시카고 학회 참가 때에 이 두 개의 찻잔을 가지고 왔다.
오빠는 장학사로 오래 일을 하시다가 은퇴 얼마 전에 학교로 돌아가셔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은퇴를 하셨다.
은퇴 후에도 집에서 쉬지 않고 두 분이 중국 연변에 가셔서 오빠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연을 하시고 언니는 교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신다.
가끔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아름답고 보람된 삶을 사시는 두 분
나의 삶에 role model(모범이 되는 사람)이 된 분들이다.
그리고 항상 그립고 보고 싶은 분들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찻잔이나 다른 소품들을 모으지 않고 있다.
이제는 슬슬 가지고 있던 것을 정리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예쁜 찻잔만 보면 자꾸만 사고 싶어서 주위를 맴돌고
찻잔을 들었다 놓았다한다.
인연 / 김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