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나의글

데이지 꽃과 새침때기 상기이모

bluepoppy 2015. 7. 25. 11:07

 

 

 

 

 

 

 

 

 

 

 

 

 

 

 

 

 

 

 

데이지 꽃과 새침때기 상기이모

 

데이지 꽃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에 우리 집은 인왕산이 보이는 청운동에 있었다.

우리 동네는 인왕산을 올라가는 언덕에 비슷하게 생긴 한옥들이 줄지어 있었다.

집이 조금 커서 문간방에 있는 꽤 큰방을 새를 주었다.

 

새로 들어온 가족은 어린 사내애 둘을 데리고 사는 젊은 미망인이었다.

남편이 군인으로 근무를 하다가 병으로 젊은 나이에 떠났다.

작은 애의 이름이 상기여서 우리는 미망인을 상기엄마라고 불렀다.

상기엄마는 은행에 다녔다.

 

 

 

 

 

 

엄마가 주로 집에 계시니 낮에는 애들을 봐주고

또 서울 근교에 사는 이모가 가끔 애들을 돌봐주러 왔다.

상기엄마는 키 큰 서구식으로 생긴 미인이다.

이모는 키 작고 아주 오밀조밀하게 생긴 귀여운 여자다.

 

상기엄마가 근무하는 은행의 젊은 직원이 상기엄마를

누이처럼 따르고 가끔 집에 들러 애들의 삼촌처럼 같이 놀아주고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었다.

우리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무엇해서 상기삼촌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상기 이모가 온 날에 우연히 상기삼촌이 근무 후에 들렀다.

지금 생각하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상기엄마가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동생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서 부른 것 같다.

남자는 이모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모는 별로라고 했다.

그런데도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없다,'는 말을 굳게 믿었는지

남자는 이모가 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우리 집에 왔다.

 

 

 

 

하루는 아주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화분 하나를 사가지고 왔다.

하얀 꽃이 소복하게 핀 화분이었다.

남자가 꽃의 이름이 데이지라고 했다.

그 때에는 꽃에는 문외한이라 채송화, 과꽃, 맨드라미, 코스모스가

꽃 지식에 전부인 나. 데이지라고 하는 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 잘못 들어 데이지 꽃이 아닌 돼지 꽃으로 한참을 알고 있었다.

예쁘고 깜찍한 이모에게 하필이면 이름이 돼지 꽃인 것을 선물했나?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꽃 이름을 물었더니 돼지 꽃이 아닌 데이지 꽃이라고 하셨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집에서는 그 젊은이를 상기 삼촌대신 돼지 꽃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데이지 꽃이 일주가 지나니 진딧물이 앉기 시작을 했고

시들시들 하더니 죽고 말았다.

죽은 화분을 내다 버리면서 이모가 싫다고 하는데 자꾸

달라붙는 젊은이가 진딧물 같다고 했다.

 

엄마는 그만하면 성실하고 직업도 튼튼한데 아깝다.’

그렇지만 싫은 사람하고는 못 사는 것이지.’ 하셨다.

 

문간방에 살던 상기 네는 2년 후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후에도 상기 엄마는 가끔 우리 집에 들렀다.

그리고 막내 동생이 결혼을 했다고 하면서 제부 되는 사람이 생긴 것만

뻔드레하고 별로라고 했다.

그 후에도 상기이모의 소식을 들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게 산다고 했다.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차라리 돼지 꽃한테 시집을 갔으면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잘 살았을 텐데.‘ 하셨다.

 

 

 

 

 

 

누나 누나 하면서 따르던 상기도 이제는 육순을 바라보겠지.

데이지 꽃처럼 청초하던 상기이모는 나를 기억할까?

데이지 꽃을 돼지 꽃으로 불렀던 나를...

 

모두 그리운 얼굴이다.

 

 

 

 

 

 

 

 

그리운 사람끼리 & 세월이 가면 - 박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