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여자"..."변덕스러운 시카고의 봄"...
변덕스러운 시카고의 봄.
오늘 오후 나의 사진의 배경으로 쓸 음악을 찾고 있는데
클래식 소품이 눈에 띄었다.
Elgar의 La Capricieuse Op.17이다.
귀에 익은 소품이라 괜찮을 것 같아서 일단 favorite에 저장을 하고
La Capricieuse가 무슨 뜻인가 해서 인터넷을 찾으니 “변덕스러운 여자”라고 나왔다.
“변덕스러운 여자”..하면서 혼자 중얼거리다가 "변덕스러운 게 여자뿐인가?"
요즘 시카고 날씨는 여자의 변덕을 뛰어넘어 왕 변덕을 부리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화씨로 70도(섭씨로 22도)가 다되는 봄이 아닌 초여름 날씨였다.
오랜만에 나의 이 작은 컴퓨터방의 창문을 열었고 나의 꽃밭에 나가
이끼를 걷어내고 옆집의 Maple tree를 올려 보니 벌써 꽃망울이 생겼다.
토요일에 점심을 먹고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새로 장만한 렌즈도 연습할 겸
시카고 보타닉가든에 가니 두 개의 파킹 장은 거의 다 차서
멀리 한 구석에 주차를 했다.
지난 주말에는 봄꽃이 피었나하고 땅만 보고 걸었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눈을 뜨지 않은 버들강아지
일본 정원 앞에 있는 인공폭포에 가니 작년에 한 두 개 피었던
버들강아지가 올해는 많이 피었다.그런데 아직 눈은 뜨지 않고 있었다.
아직 폭포에 물이 없으니 속에 들어가 바위틈에 핀 버들강아지를 몇 개 담았다.
해가 잘 드는 언덕에 가니 시카고 보타닉가든에 봄이 오면 제일 먼저 피는
눈꽃(Snowdrop)이 피었다.
보통 3월에 피는 꽃이니 한 달 먼저 핀 것이다.
한국에서는 봄에 얼음을 뚫고 피어나는 복수초가 보타닉가든에는 3월이 와야 핀다.
혹시나 해서 들른 난쟁이 가든 언덕에 복수초가 고개를 들고 나왔다.
얼마나 반가운지.
"심봤네."가 아닌 "복수초 봤네."하고 소리를 지를뻔했다.
큰 호수에는 봄이 왔다고 청둥오리들이 무리를 져서 봄날을 즐기고 있다.
호숫가의 벤치에는 봄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성급한 젊은 애들은 벌써 반바지차림이다.
이렇게 봄날 같은 날씨가 얼마나 머무를까?
일기예보를 보니 다음 주말에는 시카고의 2월 날씨로 돌아온다고 한다.
최고 온도가 섭씨로 0도가 되겠다고 한다.
변덕스러운 시카고 날씨 덕분에 일어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한 20여년전인 것 같다.
5월 중순에 교회에서 야외 피크닉을 가졌는데
무슨 음식을 해 갈까 생각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잘하지 않는 요리를
준비하자하고 마음을 먹고 오랜만에 족편을 만들었다.
실고추, 가늘게 썬 표고버섯, 파를 가늘게 썬것, 계란 지단등
색색의 고명을 얹어서 만든 족편을 썰어서
네모난 코닝웨어 용기에 가득히 담아서 가져갔다.
족편을 만든 날은 덥지가 않고 서늘한 날씨였는데
피크닉을 한 날은 더운 날씨였다.
공원에 도착하니 커다란 피크닉 테이블에 만들어 온 음식들이 다 올라와 있어서
나도 내가 만든 족편을 올려놓았다.
예배를 드리고 바비큐도 굽고 모든 준비가 되어 식사를 할 시간이 되어
테이블에 가보니 내가 만든 족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족편을 찾고 있는데 나의 친구, 루시 엄마가 "쌘디 엄마는 무엇을 만들어 왔냐?"고
물어 "족편을 해 왔다."고 하니 "어디에 놓았냐?"고 물어 "테이블에 올려 놓았는데
보이지 않네." 하니 테이블 가운데에 있는 것이 보인다고 해서
가서 보니 족편이 거의 다 녹아서 작은 수영장이 되었다.
너무 민망해서 버리려고 하니 어렵게 만든 족편 버리지 말라고.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해서 루시 엄마에게 줬다.
그 다음날 루시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만들어준 족편 아주 잘 먹었다."고
집에 가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몇 시간 지나니 기가 막힌 맛의 족편이 되었다고.
덕분에 귀한 족편을 실컷 먹었다고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렇게 유별난 음식을 피크닉에 가져갔다.
이 어쳐구니 없는 사건은
유별난 음식을 만든 나의 잘못이 아닌 순전한 시카고의 변덕스러운 날씨때문이다.
Heifetz plays Elgar - La capricieuse(변덕스런 여자), Op.17